이정도는 괜찮겠지?
약간 수위가 있어서 접어놓습니다. 앤서니X스티브 섹드립 개그. 어디서 리퀘 받았던 것.
긴 속눈썹이 꿈결처럼 내려앉았다. 쌉싸름한 맥주의 잔향이 타액과 함께 섞여들었다. 긴장된 호흡이 얼굴을 간지럽혔다. 심장이 떨려오고 손가락 끝으로 짜르르한 감각이 흘렀다. 토니는 그 감각에 상대의 팔을 더욱 세게 잡았다. 스티브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허리에 손을 둘렀을 뿐이었다. 말은 필요없었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캡, 그게 사실입니까?"
뜬금없이 날아온 호크아이의 질문에 스티브는 고개를 들었다. 뭐가? 스티브는 보던 쉴드의 리포트와 호크아이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도저히 맥락을 읽을 수가 없었다.
"고백 받았다고 들었는데."
스티브는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짚히는 곳이 없었다.
"그런 적 없는데."
호크아이는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을 했다. 이상했다. 보통 고백 받았냐는 질문을 이런 식으로 하나?
"혹시 내가 요즘식의 고백을 못 알아듣거나 한 일이 있었나?"
"아니.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던 거였어요. 난 잠시 냇과 콜슨 요원이랑 볼일이 있어서... 그럼 수고하세요."
그렇게 호크아이와의 짤막한 대화가 끝났다. 스티브는 떠나가는 호크아이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나? 스티브는 잠깐 생각을 해봤지만 군인답게 당면한 과제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토니는 상당히 유쾌한 기분으로 테이블 주변을 둘러보았다. 헬리케리어의 회의실 안에선 닉 퓨리의 호출에 모인 멤버들-스티브 로저스를 제외한 멤버들-이 스티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실, 그들은 언제나 스티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토니는 그 사실에 항상 불만을 느꼈다. 첫 번째는 시선을 즐기는 토니 스타크의 기질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모두들 스티브를 지나치게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항상 토니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스티브는 지나치게 섹시한 몸매를 하고 있고 고전적인 단정함이 지나친 나머지 섹시하기까지 한 얼굴을 갖고 있으며 지나치게 성실한 성격때문에 외형에 대한 자각 없이 누구에게나 성실한 자세로 임한 나머지 본의 아니게 주변 인물들을 매료시키는 단점이 있었다. 심지어 그 대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토니는 그가 평소 입고 다니는 촌스럽고 풍덩한 체크무늬 남방을 들고 쫓아다니며 저 지나치게 매력적인 허리라인과 탱글한 엉덩이를 꽁꽁 싸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고 싶은 욕구와 그의 핫한 몸매를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동시에 드는 이상한 현상을 경험해야만 했다.
"그러고보니 스티브는 연애 안 하나요? 인기 있을 것 같은데."
배너박사가 말했다. 토니는 입가가 슬그머니 올라가는 것을 손가락으로 숨겨야만 했다. 호크아이는 아주 잠깐 못마땅한 눈으로 토니를 흘겨본 다음 배너박사에게 대답했다.
"뭐 워낙 성격이 그러니까요. 바른 파트너를 찾아서 신중하게 연애하겠죠."
토니의 입이 이젠 숨길 수도 없이 찢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래, 그게 바로 나야! 그 바른 파트너가 나라고! 자랑하고싶어 입술이 근질거렸다. 실은 호크아이에게 은근슬쩍 말을 흘린 적이 있었다. 아니, 그걸 과연 은근슬쩍이라 표현해도 좋을 것인가-
"꼭 연애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가 있으니 외로움을 덜 수 있을 겁니다."
뒤에서 콜슨이 끼어들었다. 그 때 토니는 손뼉을 한 번 쳤다. 자신을 향해 모여든 시선을 확인하며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아냐, '나'지."
결국 말했다. 말해버리고 말았다. 토니는 두근거리는 눈빛으로 좌중을 훑어보았다. 하지만 정작 놀란 얼굴을 한 건 스타크 타워에서 함께 일하는 배너 박사 정도였을 뿐, 모두들 시니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캡이랑 나랑..."
"아니지 않아요?"
설명이 부족했나, 실망스러운 리액션에 부연설명을 붙이려는 토니의 말을 나타샤가 잘라냈다.
"말하기도 전에 부정하는 행동은 아니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사실이지만 듣고 싶지 않아요'라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가 가졌음을 알고 있는 것을 시인하는 행동이지."
"아뇨, 그녀는 당신이 더이상 헛소리 하는 것을 듣고 싶지 않은 겁니다."
콜슨이 끼어들었다. 나탸사는 고개를 까딱이며 호크아이를 가리켰다.
"바튼이 말해줬어요."
아하, 팀이다 이거지? 뭐 그래, 좋아.
"헛소리가 아냐, 우린 마음이 통했어! 화요일엔 키스도 했다고!"
"화요일이면 다같이 펍에 간 날 아녜요? 그런 광경 보지도 못 했는데?"
"당연하지, 남자 화장실에서 했는데 자네가 볼 수 있을 리가......!"
말을 하던 토니는 입을 다물었다. 유압식 자동문이 열리고 화제의 사내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더 설명해봤자 소용없을 것 같으니 잘 보라고."
토니는 나타샤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타샤는 상대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어서와요, 캡. 수고했어요. 미션에서 돌아오자마자 미안하지만 곧바로 회의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괜찮아요?"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안 괜찮잖아! 걸음걸이 왜 그래?"
토니가 스티브의 걸음걸이를 지적했다. 사실 그는 웬지 좀 어기적거리고 있었다. 캡틴 아메리카의 유니폼은 조금 먼지가 묻은 정도로, 별로 지저분해졌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추격전이 좀 있었는데 잡히는 게 하필 꽃마차더군."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 연분홍 꽃과 금실 자수 놓인 천으로 치장된 말을 타고 도심을 달리는 파란 쫄쫄이의 남자가 자동적으로 떠올랐다. 혹시 다쳤을까 걱정했던 사람들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캡, 기마 자세는 우리집에서나 보여줘."
특히나 이 사람이 말이다. 곧 여유를 찾은 토니가 유들유들한 말투로 위험한 발언을 던졌다. 뭐 키스만 했다면서 이딴 섹드립 어디서 꺼내냐 싶은 멤버들은 경악한 눈으로 토니를 돌아다 보았다. 하지만 스티브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 앉으며 파란 눈동자로 토니를 쳐다보았다.
"자네 집에 말이 있었나? 어쨌든 됐네. 전속력으로 한 시간을 넘게 탔더니 엉덩이가 아파."
"아니, 아무리 아크원자로 파워로도 전속력으로 한 시간 이상은 무리야. 그래도 엉덩이 안쪽이 좀 아파질 수는 있겠지만 끝내주게 기분이 좋을 거란 건 장담할 수 있어. 다들 반응이 좋았거든. 걱정된다면 세이프워드를 정해두고 하면 되고."
토니는 재빠르게 대꾸했다. 콜슨은 총을 꺼내 들었고 호크아이는 경악했으며 나타샤는 몹시 불쾌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이 대화의 당사자인 스티브는 콜슨 요원이 꺼내든 총에 몸을 긴장시켰다. 무슨 말인진 모르겠지만 토니의 말에 뭔가 큰 문제가 있는 듯 했다. 그는 진지하고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토니의 말을 탈 일은 없을테니 그만해. 회의를 시작하지."
그리고 그는 토니가 얼마나 깊이 말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음이 얼굴에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스티브는 아크원자로를 단 말이 대체 뭐길래 저러는 걸까 싶어 후일 다른 멤버들 몰래 그의 말을 구경하러 가봐야겠다 생각했다. 그날의 작은 소동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던 토니 스타크는 몇 통의 문자를 받을 수 있었다.
From. Romanov pm07 : 28
ㅋ
From. Bartton pm07 : 29
ㅋ
발신자표시제한 pm07 : 29
혼자 있을 때를 조심하십시오.
From. Fury pm07 : 32
상담사가 필요하다면 언제든 알아봐 주겠네. 물론 자네가 알아서 할테지만.
From. Stieve Rogers pm07 : 35
로데오 머신에 아크원자로를 달아놓는 건 조금 오버가 아닌가 생각하네. 하지만 자네가 말을 무척 좋
전용 헬기 안에서 문자를 확인하던 토니는 무척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쓸쓸한 감정은 아홉 살 생일날, 밤 열시까지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방으로 잠들러 갔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배너 박사가 위로하듯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래, 그나마 토르가 아스가르드에서 와 있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야. 토니는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며 쓸쓸히 휴대전화를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