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 중 2
이어집니다.
나는 라만 알 아하브. 아하브 대사의 둘째 아들로, 병사다. 네 살 때부터 붓을 잡았고 3년 전부터 돈을 받고 그림을 팔았으며 언제나 그림을 칭찬받았지만, 병사다.
사막의 달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단단하던 땅은 어느 새 기질이 바뀌어 푹푹 발바닥을 끌어들였다. 차가운 공기에 입김이 맴돌고 몸이 으슬거렸다.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구름마저도 없었다. 벌레 소리조차도 없었고, 오로지 나 혼자만이 있었다. 들리는 소리는 오직 모래 사락거리는 소리뿐이었다. 고독이 시리게 사무쳤다.
어쩌다가 나는 이곳에 온 것일까.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것일까. 이젠 속이 쓰리다 못해 무감각해졌다. 이따금씩 피를 토해내라고 채근하듯 조여대는 감각이 돌아올 뿐이었다. 배고픔에 번득이던 머리도 이제는 갈증으로 둔중해졌다. 더 걸을까. 더 걷든 그렇지 않든 죽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차라리 드러누워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한낮에 태양을 받은 모래가 한밤의 차가운 공기보다는 따뜻할 것이었다. 바닥에 누워 아래로 아래로 침전하면 오히려 따뜻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모래가 발목을 잡아 앞으로 나동그라졌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힘들었다. 겨우 몸을 뒤집자 별이 쏟아졌다.
왜 나는 이곳에 있는 걸까.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걸까. “정신 차리고 앞을 똑바로 봐라!” 아버지의 호통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형이 죽었으니 네가 너의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 왜 아직도 그걸 모르느냐?! 넌 언제까지 그렇게 한심하게 살 거냐? 내가 천년만년 너의 뒤를 봐줄 거라 생각하느냐?” 아버지의 풍성하고 흰 수염이 말을 할 때마다 움직였다. 짙고 어두운 갈색 옷감에 석양 색의 문양을 수놓은 옷이 빛을 받아 반들거렸다. “지금 이대로 내가 늙어 더 일할 수 없게 됐을 때 네가 네 어미, 네 아내, 네 동생과 제부를 돌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아버지가 말했다. “그게 전쟁터에 나가 사람을 죽여야만 하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제 그림은 대체 무엇입니까?!” 내가 소리쳤다. 아버지는 물건을 집어던졌다. 동생이 인도에서 가져온 연꽃과 코끼리가 새겨진 목제 필통이 깨졌다. 내가 무척 좋아하던 것이라 아버지와 반목하던 것만큼이나 그것이 애석했다.
전쟁터에 갔던 형이 죽었다. 형도 아버지만큼이나 책임감이 강한 인종이었다. “가족을 위해서”란 말이 언제나 입에 붙어 있었다. 그렇지 않을 땐 “형제들을 위해서”라고 했다. 전쟁터에 갈 땐 “가족과 형제들을 위해서”라고 했다. 이거나 그거나. 그 말을 들을 때면 항상 그런 생각을 했었다.
형은 전쟁에서 도망치다가 적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했다. 친분이 있는 연장자에 전쟁의 경험이 있는 알 샤마드와 함께 하겠다며 그의 군대에 합류했다. 형은 몇 차례 전투를 훌륭히 수행해냈고, 아버지는 형을 자랑스러워했다. 그 동안은 좋았다. 나는 형이 잘 해주는 만큼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누군가에겐 돈을 받고 그림을 그려줬고, 돈이 없다고 하는 누군가의 집 벽면엔 그냥 그림을 그려줬다. 문양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사람들도 좋아했고 나도 좋았다. 하지만 형이 그런 식으로 죽어버렸다.
집안은 죽음의 슬픔으로 가득 찼고, 심지어 우리 집 개조차도 고개를 낮게 두고 소리를 삼갔다. 아버지는 며칠이나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고 어머니는 눈물로 히잡을 적셨다. 동생조차도 충격으로 입을 거의 열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였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림조차도 그릴 수 없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방 밖으로 나왔다. 다시 출근을 했고 돌아와서 내게 형 대신 전쟁터에 가라고 했다. 나는 사람은 죽일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와 나의 갈등이 한 달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힘들겠다.”
아버지와 말싸움을 하고 나오는데 정원에서 동생이 말을 걸었다. 언제나 날 싫어하고 피하던 아이였기 때문에 상당히 놀랐었다.
“불효하는 것도 힘들지 않아? 가는 게 맞지 않겠어?”
동생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아마 눈을 휘둥그레 떴을 것이다. 잠시 동안 말을 잊은 채 충격으로 멀거니 서 있었다. 동생은 그런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우린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얼어붙은 것 같았다. 정원의 작은 물줄기 흐르는 소리만이 반증이 되어 주었다.
“무슨... 소리야?”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동생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집에서 일하지 않는 남자는 형님뿐이야. 아버지도 나도 돈을 벌고 있어. 하지만 형님은 쓰기 바쁘지.”
“나는 그림을 그리고 있어!”
“코발트를 뭉개어 쓰고 금가루를 치덕치덕 바르고 몇 푼을 벌어오지. 그나마도 상대가 돈이 없다고 하면 무료로 그려주고. 그나마 돈이 좀 되는 것들은 모두 아버지를 보고 돈을 내는 것들이지 형의 실력이 대단해서가 아니야. 형이 여태까지 쓴 재료값을 생각해보면 그 돈도 턱도 없지. 하루 종일 안료를 쓰고 또 쓰고, 쓰고 또 쓰는데 무슨 돈이 남겠어?”
“내가 그림을 그려서 얼마나 벌었는지 알아?!”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형에게 일이 생길까?”
동생의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그것은 모른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일을 감당하지 못해 손목이 고장 날 때까지 그리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들개처럼 굶어 죽을 수도 있다. 혹은 행상을 다니는 동생에게 얹혀 재산이나 축내는 못난 형이 될 수도 있겠지. 일을 맡긴 사람들은 모두 내게 아버지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는 것으로 이별의 인사말을 대신했다. 그들은 내게 무엇을 원해서 일을 맡겼던 것일까?
“가족이 없으면 형도 없어.”
동생이 차갑게 말했다. 나는 낙담해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심장을 죄어왔다.
“가. 가서 장남의 의무를 다하고 와.”
동생의 말이 정수리에 내리꽂혔다.
“난, 죽을지도 몰라...”
“그럼 죽기 전에 죽여.”
동생의 말이 목덜미에 박혔다.
“쉽게 말하는구나...”
내 중얼거림에 동생은 잠시 숨을 멈췄다.
“내가 몇 명이나 죽였을 거라 생각해?”
동생이 말했다. 이번엔 내가 숨을 멈췄다.
“전쟁 중이라 행상을 끌고 가는 길엔 패잔병이며 전쟁으로 인해 재산을 잃은 사람들이 종종 있어. 그들은 쉽게 도둑패들이 되지. 나는 그런 도둑패들과 몇 번이고 전투를 했어. 형이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훨씬 사람을 많이 죽였을 거야. 어떻게 생각해?”
그 말을 하는 동생은 침착했다. 나는 충격으로 눈물이 왈칵 났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 열이 났다. 묵직하고 뜨거운 것이 어깨며 목구멍으로 치미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판단할 수 없었다. 세상이 조각나는 것 같았다. 깨진 거울처럼 조각난 우리 집 정원에서 동생의 검은 눈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난 그때서야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여태까지 나 혼자만이 완전한 세상에 있었고, 그런 듯이 굴었던 것이다. 나는 동생이 나를 얼마나 미워했을지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몸을 둥글게 말았다. 별이 보이는 숫자만큼 추웠다. 바닥의 모래들은 기대처럼 따뜻하지 않았다. 몸이 덜덜 떨렸다. 달빛처럼 고요한 추위가 나를 죽이고 있었다.
문득 사라진 사람들이 생각났다. 밤이면 타닥타닥 타들어가던 모닥불 옆에서 화살촉을 손질하던 사내도, 건너의 건너 막사에서 저녁을 먹고 흥이 오르면 노래를 부르던 뚱뚱한 사내도, 이유 없이 욕을 늘 입에 달고 살았던 사내도 갑자기 사라졌다. 나도 사라질 뻔했었다. 불운이었는지 다행이었는지 살아남는 대신 누군가를 죽였다. 나는 이름도 모르는 이국의 갑옷을 입은 머리색과 눈 색이 옅은 남자를 기억해냈다. 막연히 그에게 칼을 꽂을 때의 감각과 그가 자신에게 토해냈던 피의 온도를 기억해냈다. 뜨겁고 비릿하고 미끌미끌했던 그의 생명이었다.
나는 그의 생명과 나의 생명을 저울로 달아보았다. 그의 생명을 대가로 고작 나흘을 더 살았다. 이렇게 먼지 같은 생명인데 그것을 위해 누군가를 죽였다.
파리하게 갈라진 입술로 눈물이 닿아 따가웠다.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더 둥글게 말아 안았다. 긴장, 두려움, 구토, 발열, 혼란, 오열, 기도, 그리고 기도... 마음의 모든 것을 쏟아내고 싶어 울었고, 기도는 붓 끝에서, 막대 끝에서 형태를 갖추었다. 물감을 붓에 묻힐 때마다 절을 했고 획을 그을 때마다 기도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내 깃털 같은 염원은 병사들의 야만의 발자국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신이 도와주지 않는 이상 나는 무력했다. 누군가가 또 죽었고, 누군가를 죽였다. 이 이상은 없을 야만의 현장에서. 그에 비하자면 여기는 얼마나 고요하고 또 고독한가. 누군가를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이건 오히려 괜찮은 죽음이었다.
바람이 또 사락거렸다. 사막으로 하얀 그림자들이 어른거렸다. 이젠 정말로 죽음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머리 위로 정적이 내려앉고 있었다.
눈을 뜨자 화롯불이 보였다. 사물들이 어른거리고 누군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손을 움직여보자 의외로 간단히 스르륵 하고 미끄러졌다. 눈을 몇 번 감았다 뜨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마침 눈을 뜨셨군요. 이 차를 드시면 몸이 많이 따뜻해질 겁니다.”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내게 찻잔을 내밀었다. 나는 멍한 정신에 눈을 몇 번 감았다 뜨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초점이 맞을 때까지도 시간이 제법 걸렸다.
“내가 먹일 테니 이제 나가도 돼.”
뒤통수가 동그란, 목이 다소 긴 남자가 딱딱한 어투로 말을 하자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바깥으로 나갔다. 남은 남자는 말없이 서 있었다. 멍하니 시간이 지나도록 그는 날 보지 않았다. 나는 그의 등을 계속 바라보았다. 아직 완전히 자라지 않은, 하지만 이젠 제법 청년 티가 나는 등이었다.
“자밀.”
그를 부르자 그가 대답을 해왔다.
“왜 부르십니까, 형님.”
여전히 시선은 주지 않은 채 노골적으로 빈정대고 있었다. 억누른 목소리엔 분노가 담겨 있었다. 희미하게 참담한 마음과 짜증이 함께 밀려들었다. 그는 아마 나의 나약함에 화내고 있을 것이었다. 어쩌다가 구출된 것일까? 왜 하필 그에게 구출된 것일까? 차라리 그때 죽게 내버려뒀으면 좋았을 것을.
불러놓고 말이 없자 동생이 먼저 나를 곁눈질로 힐끔 보고선 찻잔을 가리켰다.
“드시죠.”
예의바르지만 고압적인 말투였다.
“어떻게 된 거야? 여긴 어디야?”
나의 물음에 그가 몸을 홱 돌려 나를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화가 나 있었다. 평소에는 조소하듯 차갑게 내려앉은 검은 눈동자에 분노가 일렁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그는 언성을 높였다. 아직 조금 덜 여문 목소리가 뒤집혔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대체 어떻게 된 일로 왜 거기에 있었는지, 자기가 뭘 하는 지나 알고 거기 자빠져 있었는지!!”
그는 일갈하곤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고 고개를 숙였다. 화가 가라앉지 않는지 불규칙적인 박자로 서성거렸다.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가 멈춰서 눈두덩을 눌렀다가 머리를 다시 쥐어뜯으며 걷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얼굴을 쓸었다가 한숨을 쉬었다가 했다. 아직 어린 티가 남은 아몬드 모양의 눈을 찌푸렸다가 깜박거렸다가 했다. 동생의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저 멀거니 그의 모습을 쳐다볼 뿐이었다.
“형은 꼭 이딴 식으로 자기주장을 해야겠어?”
다소 누그러지긴 했지만 여전히 공격적인 말투로 쏘아붙이곤 끙 소리를 내며 팔을 털었다.
“왜 아직 안 마셔? 마셔!”
동생은 다시 찻잔을 가리켰다. 나는 조금 신기한 기분에 사로잡히며 찻잔을 들었다. 한 모금 마시자 따스한 기운이 목구멍을 통해 안으로 전달되었다. 나는 그때서야 내가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연신 찻잔을 기울여 차를 들이켰다.
찻잔은 눈 깜짝할 새 비워졌다. 동생은 빈 찻잔을 채워주었고 나는 다시 차를 들이켰다. 온기가 손끝까지 전달되었고 등이 후끈해져왔다. 짙은 안개가 껴있던 것 같은 머리가 맑아졌고 몸은 가뿐해졌다. 찻주전자는 눈 깜짝할 새에 비워졌다. 그때서야 한숨이 나왔다. 마치 생명이 돌아오는 것 같은 한숨이었다. 동생은 온기를 탐하는 내 모습을 보자 화가 누그러졌는지 옆에 와 앉았다.
“어떻게 된 거야?”
딱딱한 어투로 동생이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잔을 내밀었다. 동생은 물을 채워주었다.
“형 부대가 적들과 마주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의 목소리가 다시 차분히 가라앉았다. 난 이번엔 차 대신 물을 들이켰다. 뜨끔했다. 어떤 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탈영한 거야?”
정곡을 찔렸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두려움에 팔을 안았다. 정직하게 그렇다고 대답하면 다시 그곳으로 끌려갈까? 또다시 죽이거나 죽거나 극단적인 양자택일의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는 걸까? 긴장에 폐부까지 따끔거렸다. 동생은 나를 그곳으로 내몬 장본인이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나는 필사적으로 대답을 찾아봤지만 적당한 구실이 떠오르지 않았다. 겨우 따뜻하진 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동생은 그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살아서 다행이야.”
동생이 말했다. 난 그의 너무나도 의외인 한 마디에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뭔가를 떨쳐내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금 깨어나서 별로 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자둬. 내일 또 출발해야 하니까. 형은 우리 행상과 같이 가지.”
그는 천막 문을 열었다. 싸늘한 기운이 대번에 코끝으로 침범해 들어왔다.
“어디로 가는 건데?!”
불안한 듯 물었지만, 동생은 나머지는 내일 얘기하자고만 했다.
천막이 닫히고 나 혼자만이 남았다.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주변을 살펴보자 크지 않은 천막 가장자리로 꾸러미 같은 것들이 쌓여 있었다. 발갛게 타는 화롯불 주변엔 아까 마신 찻주전자와 찻잔 같은 것들이 널려 있었다. 바닥은 흙바닥이었다. 나는 이불을 끌어올리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밖에서 낙타들이 쌔근거리는 소리와 드문드문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이곳이 어딘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혼자는 아니었다. 동생은 내게 내일 당장 다시 돌아가라고 말하지 않았다. 의무를 운하지도 않았다. 화롯불은 따뜻했다. 점점 몸에서 힘이 빠지고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순간순간 의식이 깜빡거리고, 곧 나는 다시 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다 같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금속 부딪치는 소리가 어지러이 흩어지고 땀내와 진창 냄새, 금속의 비릿한 냄새, 오물냄새가 먼지와 함께 뒤섞였다. 따가운 햇볕에 여기저기서 날카로운 빛이 번쩍이고 사내들의 함성이 공중을 울렸다. 나는 갑옷으로 단단히 무장한 사람들 사이에 끼어 옴짝달싹도 못 하고 저 검은 정수리들 너머 전장을 초조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사막은 장정들의 땀으로 먼저 젖고 그들이 흘리는 피로 웅덩이가 생겼다. 누군가의 팔이 잘리고 누군가의 머리가 갈라졌다. 전장은 공포와, 그를 덮기 위한 광기로 휩싸였고, 그건 후위에 있는 우리에게도 전염되었다.
나는 생각했다. 대검에 머리가 찍혀 뇌수가 튀는 사람의 옆에 있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떤 기분일까. 그 대검이 나를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는 순간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리고 그것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 걸까. 왜 여기 오는 것일까. 여기는 이미 지옥이었다.
누군가가 맹렬한 기세로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거대하고 날카로운 도끼로 병사들을 찍어내고 절단내며 사자처럼 포효하고 있었다. 그의 주변으로 병사들이 단말마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어나갔다. 혹은 그가 지나고 나서야 잃어버린 육체의 단면을 붙잡고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 광경에 압도되어 그저 간절히 그가 내 쪽으로 오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내 앞에 서 있던 자가 도끼로 목을 찍히고 쓰러졌다. 도끼가 자른 단면이 먼저 보이고 그 후에야 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아까부터 얼어붙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투구 사이로 보이는 그의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어, 마치 죽음을 내리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자처럼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쓰러졌고, 이렇게 얼어붙어있기만 하면 나 역시 그들과 같이 죽어 쓰러질 것이었다.
식은땀이 나고 몸이 덜덜 떨렸다. 숨쉬기가 힘들어져 어깨로 겨우 숨을 이어갔다. 발끝에서부터 턱 끝까지 두려움이 서늘하고 저릿저릿한 감각으로차올랐다. 덜덜 떨리는 손에 힘을 주어 어떻게든 빼든 칼을 쥐고 서 있었다. 목뒤부터 뒤통수가 아플 정도로 긴장되어 있었다.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눈 한 번 깜박이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그가 나의 앞으로 왔다. 그의 도끼가 높이 올랐다. 도끼에 더덕더덕 붙은 피와 살점이 선명하게 보였다. 날카롭게 벼린 도끼날이 공기를 베며 나의 어깨로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헉!”
눈이 번쩍 뜨였다. 어둠 속이었다. 아직 오싹한 기운이 어깨며 등골을 휘감고 있었다. 나는 눈을 두어 번 더 깜박였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천장이 보였다. 아름다움이나 문양이라곤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익숙한 부대 막사의 천장이었다. 양옆으로 사람들 자는 숨소리가 들렸다. 손으로 만져보자 목이 멀쩡히 몸에 붙어 있었다. 도끼로 몸이 갈라지거나 하지도 않았다. 다행히 그건 꿈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때서야 안심이 된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악몽을 꿨나보지?”
옆 침대에서 나지막이 말을 걸어왔다. 첫날부터 나를 영 마뜩찮게 보던 살람이라는 사내였다.
“전쟁터에서 악몽을 꾸는 건 당연한 일이긴 해. 하지만 그건 전쟁터에 나가보기나 하고서 하라고. 형씨 기가 약한 건 알겠는데, 벌써부터 그러면 진짜 전쟁터에 나가게 되면 어쩔 거야?”
그의 말에 나는 잠시 숨이 막혀왔다. 밤의 어둠이 몽땅 내 위에 올라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에게도 나와 같은, 혹은 그보다 더 큰 어둠이 올라타고 있을 터였다. 나는 그에게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았다.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그의 눈이 젖어있음이 보였다.
“형님은 진짜 전쟁터에 나간 적이 있습니까?”
그가 나보다 연상임은 확실했기에 그렇게 물어보았다.
“다섯 번 정도...”
그는 그렇게 말하곤 맞은 편 옆의 침대를 보았다. 거기엔 그의 고용주의 침대가 있었다. 그는 이브라힘이라는 이름이었다. 살람은 다섯 번이나 전쟁터에서 살아남았고, 그 경력을 인정받아 이브라힘의 아버지가 살람의 처자에게 생활비 10년분을 주는 것을 조건으로 이브라힘의 시종이자 경호원으로 고용되어 왔다고 했다. 나에게 그의 경력은 마치 까마득한 선지자의 이력처럼 들렸다. 나로서는 도저히 그처럼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가 왜 이 시간에 깨어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악몽을 꾸셨습니까?”
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아마 그도 악몽을 꿨으리라.
“쓰지도 못할 칼이 더럽게 화려하네.”
배수대에서 얼굴에 덕지덕지 묻은 코피와 흙먼지를 닦아내고 있자 그가 지나가며 한 마디 했다. 나는 언제나 허리에서 덜렁거리던 무겁고 화려하기만 한 애물단지를 들어 흔들어 보였다. 이런 건 나에게 필요 없었다. 그저 무겁기만 했다. 아무리 좋은 금속으로 아무리 잘 갈아놨어도 내겐 그저 흉측한 것일 뿐이었다.
“형님 칼도 화려하게 만들어 드릴까요?”
“왜? 거기 형씨 칼에 박힌 보석이라도 떼서 박아주려고?”
“그런 것보다 훨씬 가벼운 걸로 해드릴 게요.”
“허허, 실없게...”
살람은 그렇게 말했지만 막사로 돌아가자 내 옷을 잡아끌어 자신의 칼집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옷을 보았다. 전반적으로 미색의 옷을 입고 있으니 어떤 색이든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붓을 꺼냈다.
붓이 가죽 칼집에 닿았다. 붓끝이 폭신하게 탄력을 갖고 마치 손의 일부처럼 가죽의 질감을 손가락 끝으로전해줬다. 검붉고 밋밋한 가죽이었던 것이 점점 색을 띠어감에 따라 나의 의식도 그 안으로 빨려들어 갔다.
물감은 청록색에서 푸른색으로, 그리고 붉은 색으로 바뀌어갔다. 살람은 숨죽여 색이 피어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마치 물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 밖에선 다른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고 명령을 하고 싸워댔지만, 이곳은 물감으로 그려진 물속이었다. 욕설하는 소리, 칼날끼리 부딪치는 소리, 싸워대는 소리는 멀어지고 오로지 내면의 소리만이 형태가 되었다.
“예쁘다!”
살람이 감탄하는 소리를 냈다.
“형씨 솜씨가 보통이 아닐세! 굉장허이! 이건 낙타 백 마리와도 안 바꾸겠어!”
“빈 소리 하지 마세요.”
“아니, 진짜로! 여긴 다들 번쩍번쩍 하는 화려한 칼들을 차고 다니니 내심 좀 부러웠는데, 지금은 내가 제일 예쁜 칼을 들게 됐네!”
“그 정도까진...”
“형씨, 또 누가 괴롭히면 말해. 내가 도와줄 테니까.”
살람은 순박한 얼굴로 웃었다. 전쟁터를 다섯 번이나 경험했는데 어떻게 그런 얼굴로 웃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기뻤다. 부대에 오고 처음으로 내가 나인 것을 실감할 수 있었고, 그것이 다행이라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고마워요, 형님.”
왠지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살람은 여전히 순박하게 웃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말이 달리는 소리가 났다. 덜그럭거리며 가문의 문장을 입은 기사가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나는 두려움에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기사는 길고 거대한 검을 휘둘렀고, 살람의 목이 떨어졌다.
“살람!!”
나는 그의 이름을 외쳤다. 기사는 나를 내버려둔 채 다시 어둠 속으로 멀어졌다.
“살람!!!”
나는 다시 외쳤다. 허물어진 그의 몸은 완전히 해체되었다. 그의 머리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살람!!!”
그에게로 달려가는데 그가 계속 멀어졌다. 눈물이 왈칵 났다. 팔을 허우적거리는데 팔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팔을 꽉 잡고 놓지 않는 것 같았다. 울음이 터졌다. 불안함과 답답함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래서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