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17. 01:13



  석양이 지고 있었다. 매끈하기 그지없는 빌딩들이 모두 한 가지 색으로 빛나고, 그 사이로 보랏빛 땅거미가 슬금슬금 지평선을 물들이고 있었다. 빌딩의 머리 위에 얹힌 가뿐한 새털구름이 한결 풍취를 더했다.
  하얀 식탁보 위엔 두툼한 스테이크가 셋팅되어 있었다. 구운 당근이며 브로콜리며 모든 것들이 생각했던 대로 놓여져 있었다. 앤서니 에드워드 스타크는 자신이 차린 식탁에 만족했다. 
  "상대가 당신만 아니었다면 딱 좋았을텐데 말이야."
  토니는 포크를 들어 맞은 편에 앉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는 짧은 금발을 단정하게 정리한 미남이었다. 그러나 어째선지 포크와 나이프를 든 손엔 팔꿈치 근처까지 오는 투박한 붉은 장갑을 끼고 전반적으로 비비드 블루의 타이츠를 입고 있었다. 가슴팍엔 흰 별dl 박혀 있었고 복부엔 붉은 색과 흰 색의 스트라이프가 교차되고 있었다. 다만 그런 촌스러운 디자인이 무색할 정도로 그는 미남이었고 썩 몸매가 좋았다. 
  "난 버거 세트 하나면 충분했어."
  "나도 벌써 콜레스테롤 걱정하는데 노인네는 더 신경써야지. 안 그래?"
 토니는 그에게 와인을 더 따라주었다. 남자는 고개를 돌려 와인이 잔 속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봤다. 토니는 그런 그의 얼굴을 보았다. 긴 속눈썹과 투명하리만치 파란 눈동자는 같은 남자가 봐도 감탄할만 했다. 
  "맛있군. 고마워."
  우아한 솜씨로 고기를 자르며 그는 말했다. 
  "말이야 말이지, 이건 내 비장의 무기인데 맞은 편에 앉아있는 게 파란 쫄쫄이 입은 덩치 좋은 남자라니, 말이 돼?"
  그 말을 하자 토니는 피식 웃음이 튀어나왔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식탁, 딱 두 개만 셋팅된 의자, 전에없이 아름다운 바깥 전경, 그리고 맞은 편에 앉은 것은 페퍼도 아리따운 아가씨도 아닌 글래머러스한 남자라니, 이 참을 수 없는 간극에 터진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결국 토니는 소리내서 웃기 시작했다. 웃음이 전염된 것인지 맞은 편의 남자도 작게 웃었다. 그러자 토니는 웃음을 멈췄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의 웃는 얼굴을 쳐다보았다.
  "......? 스타크, 내 얼굴에 뭐라도...?"
  토니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술을 퍼마시다가 아크리액터에 대한 새로운 고찰의 증명식이 생각나 다이어리 여백에 적다가 공백이 모자라 나머지는 생략했는데 실은 아무래도 그걸 까먹은 것 같아. 알콜로 인한 단기기억상실이 치매의 일종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치매의 일종이 맞는 것 같단 말이지. 물론 내가 치매에 걸려도 닉 퓨리보단 똑똑할 거란 자신이 있어.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잔에 따라놓은 와인을 급하게 한 모금 들이켰다. 눈동자가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하고 커다란 눈 안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사실 그는 당황했다. 맞은 편에 앉은 남자의 용모가 준수해서라거나 뭔가 못 볼 것을 봤다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정확히는 놀랐기 때문이었다. 캡틴 아메리카 - 맞은 편의 남자가 살짝 웃은 것으로 그는 몇 가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그를 만난 지 대략 2개월째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오늘에서야 알았다. 맞은 편의 남자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웃은 적이 없었다. 아니, 토니 스타크는 그가 웃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아마 웃긴 웃었겠지, 그가 보지 않는 곳에서.
  "캡, 사람이 웃지 않고도 지낼 수 있나?"
  토니가 물었다.
  "?? 글쎄, 지낼 수는 있겠지만 불편하겠지."
  스티브는 대답을 하곤 잠시 이맛살을 찌푸렸다. 들고있던 포크와 나이프가 아래로 쳐졌다. 그는 토니의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챘다.
  "나도 웃는 걸 싫어해서 그러는 건 아냐. 다만 아직은 적응이 필요할 뿐이야."
  "그런 소릴 자주 들었나봐?"
  "닉 퓨리와 블랙 위도우와 아파트 주민들과 방금 자네까지.'
  그는 한숨을 쉬었다. 토니는 당황하며 손사래질을 쳤다. 
  "아니아니, 굳이 억지로 웃으라는 건 아니야. 난 그저..."
  토니는 정리되지 않는 생각을 정리하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얼굴은 다시 그가 알던 평소의 스티브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아직 닉 퓨리도 블랙 위도우도 아파트 주민들도 그의 웃는 얼굴을 보지 못 했다니 왠지 모를 만족감이 들었다. 그들은 보지 못했을 그의 미소는 우아하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있었다.
  "그저 웃는 얼굴이 더 좋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토니는 그 정확한 표현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더... 뭐랄까, 더 아름다운 느낌을 줘."
  토니는 말하고선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맙소사 내가 뭐라고 한 거야? 말해놓고 스스로 당황하는 토니의 모습을 보고선 스티브는 피식하고 웃었다. 이번엔 고른 치아까지 드러냈다. 토니는 그제서야 자신이 찾던 표현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사랑스러웠다. 이 모든 감정은 사랑스러움이었다. 그는 다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엔 먹고있는 접시를 비울 때까지 둘은 아무 말도 없었다.






-------------------------------------------------------------------
어디서 리퀘 받았던 것.

Posted by in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