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아고 가르마고...
-나를...... 샤아!
멀리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대충 내용은 짐작할 수 있었다. 라라아는 숨이 막힐 듯이 미노프스키 입자가 짙게 뿌려진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나아갔다. 소리는 저기서 나고 있었다.
-지직... 나를 ...지직... 구나, 샤아!
미노프스키 입자의 영향 하에서 통신기기들이 늘 그렇듯이 목소리엔 심한 노이즈가 껴 있었다. 마치 고장 난 구식 라디오의 소리 같았다. 그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라라아는 그의 소리에 공명하는 부서진 전투기의 잔해를 밀어내며 전진했다. 잔해는 무중력 속을 부유하며 고요히 멀어졌다. 라라아 역시 미끄러지듯 소리의 발원지를 향해 나아갔다.
-나를 속였...지직, 샤아!
가까이 다가가자 그건 하나의 작은 빛의 덩어리였다. 라라아는 그것을 양손으로 감쌌다. 그것은 라라아의 기척을 느끼고 말을 멈췄다. 주변은 다시 정적으로 가라앉았다. 오로지 우주의 먼지와 어둠만이 그들을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 있었군요. 당신을 찾아 지구까지 다녀왔어요. 설마 사이드3의 권역에 있었을 줄은 몰랐네요."
라라아가 말했다. 희미하게 미소 지은 듯도 했다. 작은 빛은 손 안에서 침묵했다. 라라아는 딱히 대답을 구하려 물은 건 아닌 듯했다. 라라아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손바닥 위에 놓인 빛덩이에 손을 집어넣었다. 빛은 당황한 듯 빛의 세기를 강하게 했다 약하게 했다 하며 손바닥 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깥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내부에서부터 잡힌 빛은 라라아의 권역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빛은 경련하듯 빠른 속도로 움직였지만 라라아는 놓아주지 않았다.
"무슨 짓이야?!"
빛은 소리쳤지만 라라아는 그저 웃음을 띠며 "당신이 절대로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만 대답했다. 라라아는 빛 속으로 자신의 팔뚝까지 집어넣었고, 그 팔이 빛 바깥으로 빠져나올 때 빛으로부터 희미하게 빛나는 손이 함께 미끄러져 나오기 시작했다.
라라아의 다갈색 손이 잡아끌고 있는 손은 하얀 면장갑을 낀 긴 손가락이었다. 고생을 모르는 부자 남자의 손이었다. 붉은 바탕에 금실로 화려하게 수놓인 소맷부리가 함께 딸려나오고 있었다. 진녹색의 소매가 라라아의 인도에 의해 끌려 나오고 그 뒤로 동그란 남자의 머리가 빛으로부터 나왔다. 라라아는 힘을 주어 그의 형태를 한 번에 빛으로부터 빼내었다. 빛은 발끝에서 그에게 스며들었다. 그는 라라아가 이끌어낸 방향으로 부유하며 라라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인도계의,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넌 누구지?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이건 대체..."
빛으로부터 나온 남자는 자신의 몸을 더듬으며 확인했다. 그저 의식체로서 흘러다니던 그의 존재가 다시금 육체를 갖고 재구성 되었다. 옷은 그가 죽을 때 입고 있었던 지온 공국 키시리아 소장 소속 지구군 사령관 장교복 그대로였다. 그는 조금 긴 앞머리를 매만졌다. 스타일링까지 완벽하게 죽기 직전을 재현하고 있는 듯했다. 위화감은 없었다. 그는 그것에 위화감을 느꼈다.
"넌 누구지?"
그는 다시 한 번 라라아에게 물었다. 라라아는 그를 만족스럽게 봤다.
"난 라라아 슨이에요. 당신은 가르마 자비죠. 당신에게 부탁이 있어서 왔어요."
라라아의 먼 곳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그를 향했다. 어딘지 모르게 사람을 매혹하는 눈빛이었다. 가르마는 손가락으로 앞머리를 꼬았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부탁할 일이 뭐지?"
가르마가 묻자 라라아가 그의 귀에 속삭여 줬다. '대령님을 구해주세요.' 대령이면 누구 대령? 가르마가 묻자 라라아는 웃었다. 아시면서. 가르마는 그 미소가 썩 불편했다. 어딘지 사람을 위압하는 힘이 있는 미소였다.
"그렇네요. 당신이 살아있을 땐 아직 소령이었으니 대령님이라고 말하면 모를 수밖에 없겠군요."
라라아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가르마는 등줄기에 오한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그는 열이 나고 속이 꼬이는 것을 느꼈다. 온몸의 털이 쭈뼛 곤두서고 스치는 옷의 감촉마저 에이는 듯 아프게 느껴졌다. 악다문 어금니에선 부러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마찰하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라라아는 그가 뿜어내는 증오의 열기를 담담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나더러... 그 녀석을 구해달라고 하는 건가?"
가르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양 팔은 서로를 끌어안은 지 오래다. 몸이 발하는 열 때문에 오히려 오한이 들었다. 죽기 직전, 미노프스키 입자의 영향으로 노이즈가 껴있는 상태에서도 또렷이 들렸던 그 목소리, 웃음소리가 귓전을 왕래했다. 모함 가우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했던 그 말이. 넌 좋은 친구였지만 네 아버지가 나빴던 거야. 겨우 그런 이유로 자신을 죽였던 남자가 있었다. 자신은 그로인해 죽으면서까지 공을 세우지 못 했다. 가우는 목마를 앞에 두고 허무히 폭파되었다. 이 목숨의 결말은 개죽음이었다. 가르마는 식은땀을 흘렸다. 얼마나 오랫동안이었을까, 그는 오로지 그 일만을 생각해 왔다.
"예, 가르마 소령님. 샤아 대령님을 구해주세요. 그러기 위한 조치니까요."
라라아는 태연히 말했다.
"지금부터 당신은 과거로 가게 될 거예요. 그리고 당신은 대령님을 구하게 될 거예요. 그렇네요. 그래서 대령님이 당신을 죽이지 않게 된다면 당신은 다시 삶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내가 그를 죽이면 어떻게 되지?"
라라아는 그를 보며 다시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가르마는 발끈했다.
"내가 못할 것 같아?! 죽일 수 있어! 나도 샤아를 죽일 수 있어! 아니, 반드시 죽이고 말 거야!"
그는 다소 극적인 움직임을 섞어 라라아에게 선언했다. 하지만 어쩐지 얕보는 듯한 시선은 변함이 없었다.
"당신은 지금 한시적인 생명을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거기서 죽으면 다시 죽음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세요. 당신밖에 없어요, 가르마 자비."
라라아는 말했다. 가르마는 흥분해서 소리쳤다. 아니, 난 그녀석을 죽일 거야! 죽여서 나와 똑같은 고통을 겪게 할 거야! 간도 쓸개도 내줄 마냥 굴다가 뒤에서 쏴버릴 거야! 듣고 있어?! 난 그를 죽일 거야!!
그러나 별안간 시계가 차단되고 아까보다도 더 새까만, 먹먹한 어둠이 주위를 집어삼켰다. 소리는 어둠에 잡아먹히고 그가 지르는 소리 같은 건 스스로의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가르마는 악을 썼다. 왜?!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스스로가 어둠의 무게에 짓눌려 주저앉을 때까지 계속해서 외쳤다. 그리고 목구멍 안쪽까지 무거운 침묵으로 들어차게 됐을 때 소리 지르는 것을 포기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목이 아파왔다. 아픔은 진짜 육체를 얻었다는 증거였다. 가르마는 죽어있었을 때의 견딜 수 없이 시렸던 감각을 떠올렸다. 그의 영혼은 새로 얻은 육체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적응하고 있었다. 이제 시리거나 추운 느낌은 없고 오히려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뱃속에서부터 치밀어오르는 감정에 눈가가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머리가 뜨겁고 눈두덩은 더욱 뜨거웠다. 눈물이 꿇어앉은 허벅지와 위에 올린 손등 위로 떨어졌다. 그는 그것을 망연히 내려다 보았다. 그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없이 멍하니 어둠 속에서 한참동안이나 그렇게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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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