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이 데굴데굴 굴렀다. 공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작은 결정에 부딪쳐 몇 번인가 튀어오르기도 하면서 경쾌하게 굴렀다. 놀이터의 모래도 건너 사람들이 걷는 보도를 건너, 그리고 건너 건너 고무 공은 공원 수풀의 그늘 속으로 들어갔다. 공을 놓친 아이는 검은 눈을 깜박이며 그늘 속으로 들어갔다. 줄기차게 달린 공은 계속해서 굴러 수풀의 깊은 곳으로 아이를 유인했다. 울창하고 거대한 나무 뿌리에도 멈추지 않았던 공은 크고 검은 늑대 앞에서 의지를 갖고 마침내 멈춰 섰다. 공을 좇던 아이는 늑대를 앞에 두고 얼어 붙었다. 두 발로 서면 남자 어른 만큼은 될 법한 덩치와 두툼한 앞발, 사납게 부푼 검은 털, 그리고 무엇보다도 날카롭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가 위협적이었다. 아이는 숨 죽인 채 꼼짝 못 하고 늑대를 쳐다보았다. 찰나를 길게 늘인 침묵이 이어졌다. 늑대는 귀를 뒤로 바짝 넘기고 경계의 눈으로 아이를 관찰하고 있었다. 긴 털은 마치 파도처럼 물결치고 있었다. 아이는 곧 늑대가 달려들 것 같아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툭 아이는 하마트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늑대가 아주 조금이지만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비명 대신 공기 새는 소리를 내는 데 그쳤던 것은 비명을 지르기엔 너무 겁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맥이 탁 풀려 주저앉았다. 그와 동시에 공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아이의 품으로 안겨 들었다. 아이는 늑대를 올려다 봤다. 늑대는 어슬렁거리며 다가와 아이의 볼을 코로 밀었다. 아이는 뒤로 넘어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늑대는 유순하게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믿을 수 없어 늑대의 얼굴을 쓰다듬으려 손을 들었다. 늑대는 아이의 손을 슬쩍 피했지만 여전히 아이의 옆에 서 있었다. 아이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일어섰다. 늑대는 따라 오라는 듯 아이가 왔던 길로 걸어갔다. 몇 걸음 걷다가 아이가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듯 뒤로 돌아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이는 늑대의 안내를 받아 공이 들어왔던 길로 무사히 돌아왔다. 수풀 너머 빛의 세계가 보였다. 아이는 가만히 서서 자신이 나가기만을 기다리는 늑대를 돌아보았다. 늑대는 여전히 늠름하고 잘생겼지만 다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늑대를 꼭 끌어안았다. 늑대는 아이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아이가 스스로 팔을 풀어줄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다. "고마워, 늑대야! 안녕! 또 보자!" 아이는 활짝 웃었다. 그리고 친구들이 있는 빛의 세계로 나아갔다. 늑대는 아이가 나가는 모습을 보고는 다시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늘이 끝없이 이어지는 수풀이었다.
눈을 뜨자 꿈에서 본 소년의 얼굴이 있었다. 정확히는 꿈에서보다 조금 자란 얼굴이었다. 아직 어린 티가 조금 남아있었지만, 청년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만큼은 자라 있었다.
“세하동생?”
제이는 조금 얼뜬 소리를 냈다. 현실감각이 돌아오는 속도가 평소보다 둔했다. 그는 잠시간 왜 실물 소년이 백색 조명을 배경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 했다.
“악몽을 꾸는 것 같아서요. 평소엔 내가 들어오기만 해도 깼잖아요.”
세하의 말에 간신히 감각이 현실로 돌아왔다. 침대와 등줄기 사이로는 아직도 꿈의 흔적이 질척하니 들러붙어 있었다. 꿈이어서 다행이었다. 머리맡에 앉은 소년의 손가락이 그의 얼굴을 가볍게 쓸자 그 온도에 안심 했다. 소년은 그런 제이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옅게 미소를 띠었다.
“보통 동료인 형에게 이런 행동은 하지 않을 텐데?”
제이는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그냥 동료인 형이 아니거든요.”
세하는 이제 제이의 머리칼을 만졌다. 제이는 느릿하게 두어 번 눈을 깜박였다. 그를 바라보는 세하의 눈길엔 다정함이 어려 있었다.
“아니, 그냥 동료인 형이야.”
제이는 이제 완전히 잠에서 깼는지 매정히 대화를 끊곤 몸을 일으켰다. 허리가 말을 잘 듣지 않아 끙 소리가 났지만 로맨틱한 분위기를 깨는 덴 충분했다. 세하는 그의 행동에 투덜댔다.
“그렇게 고백을 했으면 조금은 받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벌써 반년은 된 것 같은데요.”
“그렇게 거절을 했으면 이제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나, 동생? 밖에 네 또래의 여자애들이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는데 왜 나야?”
“아저씨가 안 된다고만 하지 싫다고는 안 하잖아요.”
“…왜 내 탓이야?”
제이는 입씨름을 하며 개인 샤워실 문을 열었다. 아니, 반쯤 열다가 동작을 멈췄다. 땀에 젖은 티셔츠도 벗어버릴까 하다가 세하를 의식해 그대로 입고 있던 터였다. 슬슬 어른 티가 나려는 늑대 앞에서 샤워 같은 것을 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현실대로 골치가 아팠다. 사춘기 여자애도 아닌데 왜 이런 것까지 신경을 써야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약간 짜증이 섞인 동작으로 갈아입을 옷가지를 몽땅 챙겼다.
“나 아저씨 아니다. 그리고 샤워 중엔 이 문 열지 마.”
엄중히 경고하곤 문을 닫았다. 세하는 그런 그를 보며 입을 삐죽거렸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문은 잠그지 않는다. 열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언급도 없다. 거절하는 듯하면서도 항상 어딘가 여지는 남겨둔다. 세하는 때론 그가 정말 싫어서 그러는 건지 자신을 안달하게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최근 악몽을 많이 꾸는가 봐요?”
복도를 걸으며 세하가 물었다. 몇 번인가 꿈자리가 좋지 않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제이는 한숨을 쉬었다.
“미스틸도 여기 와서 한동안은 꿈자리가 사나웠다고 하던데요.아저씨만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세하는 위로하듯 말을 건넸다. 제이는 입맛이 씁쓸했다. 세하의 말대로 제이는 이곳에 와서 수시로 악몽을 꿨다. 꿈의 내용은 거의 비슷했다. 자신은 병원 침대나 연구소에 붙잡혀 옴짝달싹 할 수 없었고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다가와 연구라는 명목 하에 자신을 괴롭혔다. 그 꿈들 중 절반은 세하의 죽음을 동반했다. 한동안은 잊고 있었던 꿈이었다. 제이는 악몽이 다시 돌아온 원인을 알고 있었다. 복도 벽에서 푸르게 빛나고 있는 글자를 손으로 더듬었다. Union, 대차원종 무력집단으로 특정 국가나 지역에 국한되지 않은 은하연방 전역에 걸쳐 존재하는 공동체다. 일견 군대처럼도 보이지만, 그보다는 인터폴에 가까운 성격이다. 다만 어느 한 곳에 속하지 않은 만큼 통제할 수 있는 곳은 없다. 그런 만큼 여차할 때 쉽게 양심을 버리고 은폐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글쎄, 유니온 자체가 악몽이지.”
그는 한숨을 쉬듯 말했다.
“나랑 같은 방 써요. 나쁜 꿈 꿀 때마다 깨워줄게요.”
세하가 지나가듯 말했다.
“그거 솔깃한데?”
제이가 웃으며 수긍했다. 세하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탕비실의 문을 열고 제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제이는 아무 생각 없이 세하가 이끄는 대로 문 안으로 들어섰다. 마침 녹차라도 마시면 좋겠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다정하게 굴며 위로하던 세하가 돌변하여 그를 벽으로 밀어붙이고 양 팔로 그를 가두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저씨, 잠깐만요.”
세하의 손이 허리로 쑥 들어와 제이는 몸을 긴장시켰다. 세하는 그를 꼭 끌어안고 목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냄새를 맡듯 제이의 목선을 따라 숨을 들이켰다 내쉬었다. 뜨끈한 체온이 은근히 그를 밀어붙였다.
“이대로 잠시만 있어요. 아무 짓도 안 할 테니까.”
세하가 속삭였다. 제이의 머릿속은 대패닉이었다. 아이고 세상에. 서지수의 얼굴이 순간 어른거렸다. 제이는 그녀의 얼굴을 외면했다. 강렬한 유혹이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갈구하는 소년의 등에 손을 얹었다. 얹으려 했다.
별안간 정체를 알 수 없는 강력한 충격이 닥쳐왔다. 충격은 제이가 등진 방향으로 그들을 압박했고, 그런 다음 반대편으로 내던졌다. 수납장 안에서 식기들이 깨졌고 싱크대 위에 있던 티포트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상비되어 있던 과자며 즉석식품들이 플라스틱 용기와 함께 쓰러져 있던 제이의 머리며 등에 부딪쳤다 떠올랐다. 조명이 몇 번인가 점멸했다.
둔중한 고통에 제이는 머리를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희미한 이명이 그를 혼란시켰다.
“으으, 아저씨 괜찮아요?”
세하가 아래서 그의 안부를 물었다. 제이는 자신 밑에 깔린 세하를 발견하곤 얼른 옆으로 비켰다. 세하는 몸을 돌려 통신기를 꺼냈다. 제이는 스스로가 통신기가 울리는 것도 모를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하야, 괜찮아? 옆에 제이 씨도 같이 있니?」
화면으로 유정이 나타났다. 다쳤는지 이마 한쪽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언뜻 보이는 배경으로 미루어보아 그녀가 있는 작전통제실도 같은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차원종의 짓이야. 브리핑을 할 테니 작전통제실로 와.」
그녀의 말에 제이는 의아함을 느꼈다.
“작전통제실? 곧바로 출격하는 게 아니라? 공격받고 있는 상황 아냐? 작전을 알려주면 여기서 곧바로 가지.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
제이가 껴들자 유정은 난감한 얼굴을 했다.
「긴박한 상황은 맞지만, 그보다도 정밀함을 요구하고 싶은 사안이네요. 다른 클로저들보다도 세하와 제이 씨에겐 특히나 준비가 필요할 거라 생각돼요. 호위는 미스틸에게 부탁할 예정이니 일단 이쪽으로 와주세요.」
그들은 눈을 마주쳤다. 이곳 아르카디아 스테이션에 배속되고 이제 10개월 남짓, 몇 번인가 크고 작은 전투를 치렀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그들은 직감했다.
사실 신화 자체에서 보자면 아제로스의 신들(오딘을 비롯한)에게 마법을 전수해준 게 바로 바나헤임의 신들이죠.
바나헤임의 신들은 모두 마법에 능하고 아제로스의 신들은 전투에 능해서, 아제로스의 신들이 "슈발 전투가 뭔지도 모르는 비실이들 다 발라보림!^q^"하고 전쟁을 시작했는데 바나헤임의 신들의 마법이 생각보다 성가셔서, 결국 평화협정을 맺고 프레이와 프레야와 그들의 아버지가 아제로스로 오는 대신 오딘의 아들 회니르와 지혜의 거인 미미르가 바나헤임으로 갔죠.
회니르가 대단히 잘생겨서 그 훤칠한 외모에 바나헤임 신들이 냅다 그들의 지도자로 앉혔는데, 미미르가 없을 땐 그저 쫄보이에 불과했던 회니르에 대단히 실망한 바나헤임의 수뇌부들이 그 책임을 미미르에게 물어, 미미르의 목을 쳐서 시신은 바다에 버리고 목은 아제로스 쪽으로 던졌다죠. 그 목을 오딘이 간수하며 이런저런 조언을 구했다고 합니다.